똑같은 물건인데 어떤 건 팔고, 어떤 건 버리고
시골에 와 살면서 의아한 부분 중 하나, 가격이라는 게 몹시도 탄력적이란 사실이다. 물건의 질을 판단하고 가격을 매기는 게 순전히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이해와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더 좋은 물건이 더 싼 가격에 팔리기도 하고, 같은 물건인데도 때로는 파는 사람 맘이고, 사는 사람 하기 나름이다. 이른바 흥정이란 것... 그게 때로 재미있기까지 하다.
무청 한 묶음에 3천 원에 팔고 있는데, 그 옆에서 무 한 다발이 묵직한 이파리들을 매단 채 3천 원이다. 잠깐 머리를 굴려보면, 무 한 단을 사서 무청을 자른 다음, 무는 무대로 쓰고 무청은 무청대로 쓰지 누가 무청만 살까 싶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고, 안 사면 다음 장에 팔면 된다. 말려도 되는 무청인데, 이장 저 장 끌고 다닌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그나마 이렇게 버려지는 무청도 있다. 무만 가져가고 이파리는 다 뜯어서 밭에다 그냥 던져두고 가버렸다. 이걸 다시 가져다 먹는지, 이대로 썩으라고 둔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무청시래기 맛이 그리운 이 사람은 이걸 보며 참 안타깝고 아깝다.
어떤 밭들에는 호박들도 굴러다닌다. 이렇게 굴러다녀도 안 먹는다. 서리가 내리고 날이 추워지니 이제는 썩고 있다. 일부러 거름 되라고 썩히나 싶은데, 도시촌사람(?) 머리로는 역시나 이해가 안 간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작고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에 호박이 덩달아 열려 있다. 일부러 덩굴을 위에다 올린 것도 아닐 텐데, 호박덩굴이 정말로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맺은 것인가.
높다란 나무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호박을 보며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날이 추워지고 언젠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인데, 어쩌자고 저렇게 높은 데서 열린 것인지. 이 밭 저 밭 걷어채이는 게 호박이고, 심지어 공중에도 달려 있는데, 역시나 장에 가면 이런 호박도 돈을 주고 사야만 한다는 사실.
집 근처 밭에는 콩이 심어진 땅이 있다. 수확철이 지나도 거두지 않길래 다 생각이 있겠지 했는데, 결국 베서 밭 가장자리에 다 버렸다. 비틀어보니 속에 마른 콩들이 가득하다.
고구마순도 지천에 버려두어 시든지 오래... 그럼에도 남의 것이니 눈으로만 보며 지난다. 장에 가면 꽤나 비싸고, 추워지니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귀한 것들이다. 가져갈 사람 가져가라고 써 두기라도 하지. 남의 작물을 보며 참 아깝고 아깝다.
나처럼 도시에 살다가 온 입주민인지, 누군가가 한 마디 하며 지나간다.
"지금은 시골 사람들이 더 부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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