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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시고르 라이프

장바구니 끌고 가다 공짜 무 얻은 사연

by 제트B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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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끌고 가다 공짜 무 얻은 사연

갑자기 시작된 시골에서의 삶이라서 아직도 도시냄새를 지우지 못한 초보 시골러, 대형마트의 삐까번쩍한 바닥에서나 구를법한 플라스틱 상자 달린 핸드카트를 아직도 애용 중입니다.

 

며칠 전 장날에도 핸드카트를 끌고 나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이라 여기저기 철벅철벅, 진흙이 묻었다가 흙탕물에 씻겼다가... 요란한 덜그덕거림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며 걸어오고 있었죠.

 

길 건너에서 차를 대고 무를 팔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보였습니다. 트럭도 아닌 일반 승용차 트렁크에서 꺼내진 무는, 무청잎을 빳빳하게 세운 채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온 도시촌사람이 그렇게 파릇한 무청잎을 본 적이 있었겠냐고요.. 늘 유통과정에서 시간이 경과되어 축 늘어지고 시들어버린 무청잎들만 봤을 뿐이었죠. 그나마 무청잎을 볼 수도 없었던 것 같아요. 대개는 위쪽에 초록잎이 다 제거된 무들이었습니다.  

 

초록잎이 우거진 무를, 정말이지 그 초록때문에 오래 보고 지나왔을 뿐인데, 무의 주인장이 뒤쪽에서 부르시더라고요. 저를 부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무를 들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제게 무를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초록'때문에 머뭇거리는 걸 보고, 제가 가격을 물을까 기대를 하셨다가 그냥 가버리니 속상하셨을 법도 한데, 무 주인장의 말씀은 이렇더라고요. 날이 추워지니 무를 다 뽑았는데 여기저기 주고 나머지 팔러 나오셨다고, 다시 가져갈 수는 없으니 그냥 주신다고요. 

 

그냥 가져오긴 그래서 무값을 조금이라도 드리려 했더니 그것도 괜찮다, 다른 작물 있으시면 한번 가겠다고 해도 이미 다 수확해서 없다고 하시대요. 공짜로 주시면서 다른 작물이라도 팔려고 하실 텐데, 시골에 와서 처음 느끼는 정은 때로 참 별납니다. 굳이 본인의 첫 농사다, 올해 귀농해 첫 수확인데 168,000원 벌었더라..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도 다음번에 팔 생각은 안 하시니... 올해 한번 농사짓고 안 지으실 것도 아닐 건데도요. 

 

 

소금으로 무 절이기

감사한 마음으로 무를 다듬어 소금에 절였습니다. 싱싱한 무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다 절이고서야 생각나서 늦게나마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가을 무라서 그런가, 물기가 많아서 절인 뒤에도 한번 꼭 짜냈어요. 도시에서 맡던 다른 무들보다 유독 향이 진합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급하게 뽑은 무

생전 시골 밭을 봐도 그런가보다 하며 지나쳤는데, 그 일 이후로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길 가다가 보게 된 밭인데요, 이 밭의 주인도 추위가 닥치기 전에 부랴부랴 무를 뽑았던가 봅니다. 무 시래기는 밭에서 아예 버리고 가셨네요. 이걸 따로 파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뭔지는 몰라도 밭 가운데 희색으로 뭔가를 잘 싸두셨네요. 무든 배추든 추위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할 텐데요. 이렇게 꽁꽁 싸두면 괜찮은 것인지,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무김치

지난번 그 무를 잘라서 만든 무김치입니다. 매운 고추를 함께 넣어 김치통 뚜껑을 열자마자 고추 냄새가 확 느껴집니다. 고추냄새가 물씬 나는 무도,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고추도 별미입니다. 

 

손수 지은 농산물을 제게 건네며, 자신의 산물을 후덕한 미소로 바라보던 초보 농부의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질 않네요. 우연히 왔다가 눌러앉게 된다는 시골인데, 시간이 좀 더 지나 어쩌면 저도 이곳에 눌러앉고 싶은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단 느낌을 요즘 많이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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